안녕하세요, 험블런입니다.
요즘 원화 스테이블코인* 법제화 논의를 지켜보고 있는데,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다들 "누가 발행사가 되느냐"에만 집중하는데, 정작 시장이 실제로 돌아가려면 그 다음 단계 — 유통과 결제 — 가 더 중요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그러던 중 미국의 사례를 살펴보면, 이 논쟁을 바라보는 시각이 조금 달라질 수 있을 것 같아 오늘은 그 이야기를 정리해보려 합니다.
* 스테이블코인(Stablecoin): 원화나 달러 같은 법정화폐에 가치를 연동시켜 가격 변동성을 낮춘 가상자산입니다. 1코인 = 1원(또는 1달러)을 유지하도록 설계되어 있어서, 비트코인처럼 가격이 급등락하지 않고 실제 결제·송금 수단으로 쓰일 수 있다는 게 핵심입니다.
국내 논의가 멈춰 있는 지점 — '51% 룰'
원화 스테이블코인 법제화 논의는 1년 넘게 제자리걸음입니다. 핵심 쟁점은 이른바 **'51% 룰'**입니다.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는 법인의 지분을 은행이 과반(50%+1주) 이상 보유해야 한다는 규제안인데, 한국은행과 일부 정치권은 통화정책 관리와 자금세탁방지 체계 유지를 위해 은행 중심 구조가 필요하다는 입장이고, 금융위원회와 핀테크·빅테크 업계는 이게 과도한 진입장벽이라고 반발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논쟁이 "발행 법인의 지분 구조"에만 머물러 있다는 점입니다. 정작 스테이블코인이 실제로 화폐처럼 쓰이려면 사용자가 코인을 보관하는 지갑, 가맹점에서 결제가 이뤄지는 결제망, 그리고 이를 연결하는 유통 구조가 필요한데, 이 부분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뒷전입니다.
다만 최근에는 여당이 8월 전당대회 이후 태스크포스를 재정비해 9월 법안 발의를 목표로 하고 있어, 절차적으로는 다시 속도가 붙을 조짐도 보입니다.
미국은 어떻게 정리했나 — GENIUS Act
미국은 작년 7월 GENIUS Act(정식 명칭은 길지만, 통상 이렇게 부릅니다)라는 연방 스테이블코인법을 통과시켰습니다. 이 법의 구조를 보면 한국의 논쟁과는 결이 조금 다릅니다.
① 발행 자격은 세 갈래로 열어뒀습니다.
- 은행(예금보험 가입 은행)의 자회사
- 연방 정부 인가를 받은 비은행 발행사
- 주(州) 정부 인가를 받은 발행사
즉 형식적으로는 은행이 아니어도 발행사가 될 길이 있습니다. 한국의 '51% 룰'처럼 은행이 지분 과반을 반드시 가져야 한다는 식의 강제 조항은 없습니다.
② 다만 '빅테크 제한'이라는 별도의 훨씬 강한 장벽이 있습니다.
금융업이 주력 사업이 아닌 상장 대기업(아마존, 월마트 같은 회사들)은 재무부 장관·연방준비제도(Fed) 의장·연방예금보험공사(FDIC) 의장, 이렇게 세 명으로 구성된 **스테이블코인 인증 심사위원회(SCRC)**의 만장일치 승인이 없으면 발행사가 될 수 없습니다.
이건 "은행과 상업(commerce)을 분리해야 한다"는 미국의 오래된 금융 규제 철학이 디지털자산 시대에도 그대로 적용된 겁니다. 은행이 항공사나 병원을 동시에 운영하지 않는 것처럼, 거대 플랫폼 기업이 화폐 발행 기능까지 가져가면 안 된다는 논리입니다.
* SCRC(Stablecoin Certification Review Committee): 미국 재무부·연준·FDIC 수장 3인으로 구성된 위원회로, 비금융 상장 대기업이 스테이블코인 발행사가 되려 할 때 만장일치로 승인해야만 자격을 줍니다. 사실상 빅테크의 직접 발행을 매우 어렵게 만드는 장치입니다.
아마존과 월마트는 왜 발행사가 되려 하지 않았나
여기서부터가 진짜 흥미로운 지점입니다. 아마존과 월마트는 실제로 자체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검토했었는데요, 이들의 진짜 목적을 들여다보면 "발행사 지위"가 아니라 결제 비용 절감이었습니다.
두 회사는 매년 카드사(비자·마스터카드 등)에 내는 인터체인지 수수료(카드 결제 시 가맹점이 카드사에 내는 수수료)로 연간 약 140억 달러를 지출한다고 합니다. 이 중 일부만 스테이블코인 결제로 전환해도 연간 수천만~수억 달러 단위의 비용 절감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게 업계 분석입니다. 게다가 정산 속도도 며칠 걸리던 것이 즉시 처리로 바뀝니다.
그러니 실제로 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그림은 이렇습니다.
- 발행은 Circle(USDC), PayPal(PYUSD), MoneyGram(MGUSD) 같은 규제 요건을 충족한 은행·핀테크 계열사가 담당
- 유통·결제는 아마존, 월마트 같은 플랫폼사가 굳이 SCRC의 까다로운 승인을 받으려 하지 않고, 이미 발행된 스테이블코인을 자사 앱과 결제망에 통합해서 쓰는 방식으로 이익을 챙김
즉 미국은 법으로 "발행"과 "유통·결제"를 사실상 분리해놓은 셈이고, 빅테크는 발행사 자격 없이도 유통 단계에서 실질적인 수익(수수료 절감)을 얻고 있습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논의에 주는 시사점
여기서 제가 눈여겨보는 부분은, 미국 사례가 "발행 주체를 누구로 할 것인가"와 "유통·결제를 누구에게 열어줄 것인가"가 완전히 다른 두 개의 질문이라는 걸 실제로 증명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한국의 51% 룰 논쟁도 마찬가지 구도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은행이 발행 지분의 과반을 갖는 구조로 결론이 나더라도, 그것이 곧 유통·결제·지갑 영역까지 은행 계열사로만 묶인다는 의미는 아닐 수 있다는 겁니다. 실제로 한국은행 자체 보고서에서도 "발행은 은행 중심, 유통은 비은행(빅테크 포함)이 컨소시엄 참여 형태로 담당할 수 있다"는 취지의 조언이 나온 바 있고, 네이버·두나무가 이미 원화 스테이블코인 연합 구축을 공식화한 것도 이런 유통 단계 참여를 염두에 둔 움직임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습니다.
물론 아직 법안 자체가 확정되지 않은 단계라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미국 사례를 참고하면, "발행 주체가 누구냐"라는 질문에만 매몰되기보다 "유통·결제 단계가 어떻게 설계되느냐"를 함께 지켜보는 게 이 시장을 이해하는 데 더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용어 정리
| 용어 | 설명 |
|---|---|
| 스테이블코인 | 법정화폐에 가치를 연동해 가격 변동성을 낮춘 가상자산 |
| 51% 룰 | 스테이블코인 발행 법인의 지분을 은행이 과반 보유하도록 하는 국내 규제 논의안 |
| GENIUS Act | 2025년 7월 제정된 미국 최초의 연방 스테이블코인 규제법 |
| SCRC | 비금융 상장 대기업의 스테이블코인 발행사 자격을 심사하는 미 재무부·연준·FDIC 합동 위원회 |
| 인터체인지 수수료 | 카드 결제 시 가맹점이 카드사에 지불하는 수수료 |
| 준비자산 | 스테이블코인 발행량만큼 발행사가 보유해야 하는 현금·국채 등 담보 자산 |
본 글은 특정 종목에 대한 투자 권유가 아니며, 필자 개인의 분석과 의견입니다. 관련 법제화는 아직 확정되지 않은 사안으로, 최종 입법 결과에 따라 내용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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